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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톡-오늘은] 9월 28일, '유관순(수감번호 371)' 옥중 순국

기사승인 2019.09.28  08: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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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9년전 오늘 오전 8시 20분

▲ 수감번호 371 번호가 뚜렷히 보이는 유관순 열사의 옥중 사진. 만세운동 후 일제의 폭행으로 인해 얼굴 전체가 부어 오른 모습이다. <사진@국가기록원>

[안경하 기자 @이코노미톡뉴스] 99년 전 오늘인 1920년 9월 28일 오전 8시 20분, 수감번호 371 유관순(柳寬順, 1902년 12월 16일 출생, 3남 2녀 중 차녀)은 18세의 나이로 순국했다.

1919년 3월 1일 오늘은 기미 독립 선언문을 낭독하면서 자주독립국임을 선포한 3.1운동을 했던 유관순 열사는 이화학당의 동창들 말에 의거하면 원래는 청초하고 갸름한 얼굴이라고 전해진다. 하지만 유 열사의 옥중 사진은 일제의 고문탄압의 강도가 얼마나 심했는지 알려주는 증표였다.

만세운동을 했던 유관순은 당시 16세였다. 그때는 이화학당 고등과 1학년에 진급한 해였고, 3.1운동이 일어난 직후 공부를 마다하고 만세운동에 참가한 것이다. 연이은 만세운동에 참가했다가 보안법 위반 혐의로 인해 유 열사는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됐고, 그녀의 부모는 3.1 만세운동 와중 일본 경찰에게 살해당했다.

"나는 왜놈 따위에게 굴복하지 않는다!
언젠가 네놈들은 반드시 천벌을 받고 반드시 망하게 되리라"


수감 중 재판장에서 그녀는 왜놈 따위에겐 굴복치 않으리라 외치면서 앉았던 의자를 재판장을 향해 던졌다고 알려져 있다.

이듬해인 1920년 9월 28일에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사했다.

유관순 열사는 1962년에 독립운동에 기여한 공로로 현재 3등급인 건국훈장 독립장인 '건국공로훈장 단장'에 추서되었다가, 올해 2월 26일에 국무회의에서 1등급인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으로 추가 서훈이 결정되었다.

안경하 이코노미톡뉴스 기자 pr@economytalk.kr

<저작권자 © 이코노미톡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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