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열단원 박차정(왼쪽)과 의열단장 김원봉의 결혼사진. <사진제공=국립여성사전시관>

대한민국에 있어서, 6월은 국가보훈처가 지정한 '호국·보훈의 달'로 불린다. 6일 현충일에 이어, 10일 민주항쟁 기념일,  25일 6.25 한국전쟁, 29일 연평해전이 모두 6월에 있다. 이러한 6월을 기리기 위해 이톡뉴스가 기획 시리즈로 '나라사랑' 기획을 선보인다. (편집자 주)

[최정아 기자 @이코노미톡뉴스(EconomyTalk News, 이톡뉴스)] 통상적으로 무정부주의자로 알려진 '아나키스트(The Anarchist)'의 대표적인 단체로 의열단을 꼽을 수 있다.

배우 장동건과 정준호 등이 출연한 한국영화 '아나키스트(2000년, 유영식 감독, 이준익 제작, 박찬욱 각본)'는 1919년  11월 만주 지린성(길림)에서 약산 김원봉이 조직힌 항일 무력 독립운동 단체인 의열단의 실화를 마탕으로 한 한중 합잡 영화다. 

김원봉은 한국에서 전개한 3.1운동에 크게 감동하여 폭력을 유일한 무기로 삼은 비밀 독립 투쟁 단체를 설립했다. 이 때가 그의 나이 23세. 구체적으로는 암살과 파괴 활동이 주요활동이었다. 김구, 김규식, 김창숙, 신채로 등이 고문 역할을 담당했다.

설립 이후, 의열단은 베이징으로 근거지를 옮겨 단원들을 적극적으로 포섭해 1924년에는 약 70여 명의 단원을 구성했다고 전해진다. 

▲ 1920년 9월 14일, 일제의 식민통치기관의 역할을 담당했던 부산경찰서를 폭파했던 의열단의 박재혁 단원. <사진=국가기록원>

의열단의 알려진 대표적 활동으로는, 1920년 9월 14일 박재혁이 일제 식민통치기관의 역할을 담당했던 부산경찰서를 폭파했고, 그해 12월 27일에는 최수봉이 밀양경찰서를 폭파시켰다. 1921년 9월에는 김익상이 조선총독부 청사를 폭파했다.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관공서 폭파와 일본 고위인사 암살 시도가 이어졌다.

1920년대 중반에 이르러 대규모 투쟁을 위해 의열단원들은 군사적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황포군관학교에 입교하기 시작해 의열단은 그 명칭이 사라지게 되었다. 

이후 의열단의 단장인 김원봉은 광복 후 미군정 시절에 빨갱이로 취급받아 월북해 김일성과 함께 북한 정권 수립에 참여했다가 1958년에 숙청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 (좌로부터) 양근환, 김구, 박열. (1948년) <사진=독립기념관 홈페이지>

또한 1923년 일본 관동대지진 이후 퍼진 괴소문으로 일본 내에서 6천여 명의 무고한 조선인이 학살된 시대 상황 속에서 항일 독립운동을 한 박열과 그의 아내 가네코 후미코와 함께 재판과정을 통해 그의 나라사랑과 열정을 잘 묘사해낸 영화 '박열(Anarchist from Colony, 2017)'에서도 아나키스트가 있다.

박열의 아내인 일본인 가네코 후미코(かねこ ふみこ, 金子 文子, 1903년~1926년 7월 23일)는 2018년 11월 17일자로 국가보훈처로 부터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됐다. 박열은 1989년에 대한민국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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