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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규형 칼럼] 동학 참가자 명예회복이면 안중근은 역적인가? 차라리 위화도 회군까지 조사하라

기사승인 2019.03.26  08:4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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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학 참가자 명예회복이면 안중근은 역적인가? 차라리 위화도 회군까지 조사하라

'동학 명예회복 심의위'의 유족 등록신청? 임진왜란·병자호란 피해자도 유족은 등록안하나?
'홍경래의 난' '묘청의 난'도 혁명으로 부르고 참가자 조사와 유족등록할 것인가
한국근현대사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 결국은 현 체제와 사회를 망가트리는 도구가 될 것

 

[강규형 (명지대 교수) @이코노미톡뉴스] 한국의 현 정부와 집권세력, 좌익세력, 그리고 “국사업자”들이라고 평가받는 국사학계의 역사인식은 하도 오류가 많고 삐뚤어진 게 많아 일일이 다 거론하기도 숨이 벅차다. 그 중 하나가 현재 유족 등록 신청을 받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명예회복 심의위“이다. 2017년 12월 ‘동학농민 명예회복법’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소위 “동학농민혁명”참여자의 자녀·손자녀·증손자녀·고손자녀까지 유족 등록 신청을 받는다.

일단 동학농민운동을 혁명으로 부르기에는 많은 무리가 따른다. 필자가 학창시절에는 1894(甲午)년의 동학농민운동을 “갑오농민전쟁”이라 부르는 것이 유행이었다. 즉 반(反)봉건·반외세적인 계급투쟁적 사회혁명이자 근대의 맹아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동학농민운동-의병-독립운동-민주화 투쟁이란 거대한 허구적 흐름을 상정한 후에, 동학을 계급혁명과 역사결정론의 시각에서 ‘갑오농민전쟁’으로 규정하고 한국 근·현대사 정통성의 시발로 보려 했다. 이런 논리의 주요 근거는 1940년에 출간된 오지영의 '역사소설 동학사'에 나온 “폐정개혁안 12개조”였고, 특히 "토지는 균등하게 나눠 경작케 할 것"이란 문항이었다. 다행히 여러 연구를 통해 이 자료는 소설에 서술된 것이고, 사료적 근거가 희박한 것이라 요즘 교과서에서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그러나 오래전 조선시대에 일어난 사건에 대해 연구하는 것은 좋은 일이나 그 후손들을 유족으로 등록한다는 발상 자체가 기이하다. 이미 동학은 교과서에 지나칠 정도로 높게 평가되고 있는데 새삼 무슨 명예회복을 하려는지 의아하다. 나중에 유공자 혹은 유족 보상금을 지급할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 그러한 작업을 위한 정지작업이라는 의심이 들 정도다. 아이러니 중 아이러니는 이것이 시행되면 가장 먼저 등록해야 할 유족은 지금 감옥에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다. 1892년 경북 성주의 동학 접주(接主·지역 책임자)로 활동했던 박성빈 옹은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부이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친조부가 된다. “뱅모의 세뇌탈출”로 유명한 우익 논객 박성현 씨도 고흥에서 맹활약한 동학농민운동 참여자의 친손자이다.

그렇다면 동학운동을 진압한 사람들은 역사의 역적들인가? 관군의 진압사령관 격인 역할을 한 사람은 홍계훈이었다. 바로 뮤지컬 ”명성황후“에서 영웅적인 인물로 숭상되는 장군이다. 더 괴이한 것은 동학운동을 진압하는 데 총력을 기울인 안중근 의사 집안은 전부 다 졸지에 역적이 되는 모순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안의사의 부친인 안태훈 선생은 황해도에서 동학농민군을 진압하는 ”의병“을 조직했고 안중근 의사와 다른 가족들은 진압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들은 말을 타고 총포를 사용하는 데 능해 농민군을 진압하는데 성공했다. 그렇다면 안중근 의사의 집안은 역적 집안인가? 동학을 격발시킨 탐관오리는 고부(古阜, 현재의 전북 정읍)군수 조병갑인데, 노무현 정부 청와대의 홍보수석이었던 사람은 바로 조병갑의 친증손녀이다. 동학군의 자손들을 등록시키면, 그 운동의 사유를 제공한 사람들과 진압한 사람들도 ”동학탄압“ 인명사전을 만들고 그 자손들은 연좌제로 벌할 것인가?

더군다나 동학농민운동 세력의 상당수가 나중에 친일단체인 일진회(一進會)에 참여하니 동학운동에 참여한 소위 ”유공자“ 중 일진회에 참여한 사람들은 빼야하는 것 아닌가? 참고로 독립운동에 적극 활동했던 춘원(春園) 이광수와 육당(六堂) 최남선(기미독립선언서의 저자)은 훗날 소위 ”협력‘의 길을 가서 친일파로 맹렬히 비판받고 있다.

역사를 자기 마음대로 그리고 상상의 사고체계 속에서 재단하려는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나오는 일들이니 당연히 졸속으로 추진되고 있다. 정부의 마구잡이식 과거사 농단은 역사를 극단적으로 단순하게 그것도 왜곡해서 해석해서 생기는 해프닝들이다. 아예 이참에 동학뿐 아니라 “홍경래의 난”의 참여자 조사와 유족 신청은 왜 안 받는지 모르겠다. 홍경래의 난은 서북지역인들이 차별에 항거해 일어난 측면이 있으니 지역감정의 피해자들 아닌가? 국사학계가 그리도 숭상하는 민족사학의 태두인 신채호가 “조선 역사 1,000년간 최대의 사건”이라 평했던 고려시대 “묘청의 난” 참여자와 후손들은 또 어떤가? 아예 이 기회에 그 명칭을 “홍경래 혁명”이나 “묘청 혁명‘으로 바꾸는 것은 어떤가.

이제는 인천상륙작전의 피해자를 보상하려는 해괴한 움직임도 있다. 기가 막힐 일이다. 보상을 하려면 6.25전쟁을 일으킨 북한과 러시아(당시 소련) 그리고 중국(당시 중공)에 하는 것이 더 타당하지 않겠나? 한편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은 국가가 제대로 대비를 안 했기 때문에 일어난 비극이니 그 피해자들과 유족들을 조사해서 보상하지 않나? 아니 더 나아가서 위화도 회군도 전형적인 군사쿠데타이니 거기에 대한 진상조사를 통해 주역들을 부관참시 정죄하고 그 후손들에게 불명예를 주려는 노력은 왜 안 하는가? 그렇게 되면 조선왕조 자체가 부정될 것이다. 어차피 이성계 집안은 몽골의 지방관리였고 여진족 귀화인이니 집권세력과 국사학계가 그리도 숭상하는 종족적 민족주의를 구현하는 좋은 방법일 수도 있다. 역사를 정치사회적 투쟁의 도구로만 생각하며, 단순하기 짝이 없는 NL(민족해방)혁명론과 종족적이고 폐쇄적인 민족감성으로만 무장한 집단이니 이런 코메디같은 일들을 반복하는 것이다.

동학농민군은 당시 여러 어려움에 처해 있던 농민들의 폭넓은 지지를 얻으며 많은 사회개혁정책을 펼 것을 요구했다. 이런 노력은 비록 실패했지만 이후 갑오개혁 등 개혁조치와 주장에 영향을 미쳤다. 이것만으로도 역사적으로 높이 평가될 사건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혁명은 고사하고 근대성을 가지고 있는 지에 대해서도 너무나 많은 반증(反證)들이 존재한다. 농민군이 실제로 정부에 제시했던 요구안은 많은 자료에 자세히 나타나 있다. 부패한 민씨(나중에 명성황후로 추존되고 현재 대중적으로 추앙되는 민비와 그 가문) 척족을 몰아내고 국태공(國太公, 흥선대원군)을 복귀시키며, "임금과 신하, 아비와 자식의 의리"를 강조하는 충효사상에 근거해 탐관오리를 몰아내고 왕(고종)을 보위하며, 조세 및 부역의 부담을 줄이고, 외세인 일본을 몰아내려는 밑으로부터의 존왕양이(尊王攘夷)운동의 성격이 잘 나타난다.

소위 “수구적”이라 비판받는 대원군과 긴밀히 연결되고 그를 전면에 내세우며 고종을 잘 모시려는 운동에 혁명성과 근대성을 오롯이 부여하기에는 많은 무리가 따른다. 더군다나 진압군인 관군의 상당수가 의병운동에 참여하고, 반면 동학농민운동 세력의 상당수가 친일세력의 핵심인 일진회의 구성원이 됐는데도 피해자 등록을 하고 유족까지 등록하려는 것은 한마디로 무리수 중의 무리수이다. 그것도 꽤 오래된 조선 시대의 사건에 대해서 말이다. 교과서나 박물관에서 당당히 제시하는 동학의 소위 “사발통문(沙鉢通文)”은 사실 통문이 아니고 통문을 묘사한 잡기(雜記)이기에 2차 사료에 불과한데도, 떡하니 원본 1차 사료로 왜곡 서술·전시하는 것도 이제는 그만했으면 좋겠다. 역사는 선전선동도구로 쓰면 흉기가 된다.

▲ 강규형 명지대 교수

문재인 대통령은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를 방문하며 "이렇게 큰 왕국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쇠락한 것인가"는 질문을 했다. 한 사회가 흥성하는 데에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지만 망하는 것은 눈 깜빡할 사이에 일어나는 법이다. 위대한 시대를 만들기는 어려워도 망하기는 하루아침이다. 바로 지금 한국 정부가 하는 많은 정책들이 베네수엘라나 그리스와 같은 몰락의 길로 인도한다고 여러 식자(識者)들이 우려하고 있다(여기에 대해선 필자의 펜앤드마이크 저번 칼럼 “문재인 정권은 한국현대사의 필연적 과정일지도 모른다” 참고). 더군다나 우리는 그리스의 막대한 관광수입이나 베네수엘라의 풍부한 원유매장량이라는 마지막 보루도 없으며, 북한과 북핵이라는 정말로 어려운 특수요인까지 갖고 있는 나라이다. 특히 1948년 대한민국체제를 부정하는 정부, 한국좌파, 그리고 국사학계 전반의 역사관은 자기 살을 파먹는 행위처럼 보인다. 과거사를 자기 방식대로만 파내려는 시도는 이제 동학농민운동까지 다다랐다. 이왕 시작했으니 홍경래의 난이나 임진왜란, 병자호란, 위화도 회군까지 꼭 과거사 규명하기를 바란다. 그것도 곰팡내 나는 민족해방 혁명론과 종족주의적 민족주의론으로. 그 결과는 파멸적일 것이다. 한국근현대사에 대한 왜곡된 인식이 결국은 현 체제와 사회를 망가트리는 도구가 될 것이다.

미국의 유명 평론가인 고든 창(Gordon G. Chang)변호사는 그의 트위터에 의미심장한 글을 남겼다. “문재인씨는 남한(대한민국)의 19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그는 남한의 마지막 대통령이 되기를 바라는 것 같아 보인다 (Moon Jaein was elected the 19th president of South Korea. It looks like he wants to be its last.) 많은 것을 생각나게 하는 문장이다. 해석은 독자들의 몫이다.

강규형 명지대 교수 econotalki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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