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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지평리 전투, 경기도 양평 소재 6.25 승전 성지 '한국 자유 지킨 외국 노병의 자부심'

기사승인 2018.06.26  14:5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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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평리 전투 전승 기념식에 참석한 6.25 한국전쟁 참전 프랑스 노병들

[최노진 기자 @이코노미톡뉴스] 경기도 양평 지평리에는 '지평리 지구 전투 전적비'가 있다. 이곳 주민들은 잘 알고 있지만 정작 우리 국민들에게 '지평리 전투'와 관련 내용은 매우 희석된 분위기다.

지평리 전투는 한국인에게 얼마나 알려 있을까? 서울 시청 앞, 강남역 등에서 지나가는 행인에게 필자가 "혹시 6.25 한국 전쟁 당시 발생한 지평리 정투에 대해 아시나요?" 라고 질문했다. 이에 대한 반응은 전혀 모르고 있다고 답했다.

반면, 경기도 양평을 방문해 현지 주민에게 문의하면 거의 모두 "지평리 전투는 UN군이 중공군을 상대로 대승했다."고 말한다.

1951년 2월 경기도 지평리에는 매우 치열한 역사적인 전투가 벌어졌다. 중공군과 미군과 프랑스군의 UN군이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전사에 의하면, 지평리 전투는 중공군의 1951년 2월 공세 당시 미2사단 23연대와 부대에 배속된 프랑스 대대가 현재 지평리에서 중공군 3개 사단 규모의 파상적인 포위 공격을 방어하며 적에게 막대한 피해를 주고 승리했다.

▲ 2018년 2월 진행한 지평리 전투 승전 전승 기념식

현재 매년 2월과 비정규적이지만 보훈처에서 마련한 해외 노병 초청 행사가 간헐적으로 양평 지평리에서 진행되고 있다. 우리 군도 지평리 전투 전승기념식을 지난 2010년부터 진행하고 있다. UN군이 참전 후 중공군과 싸워 이긴 최초의 전투인 점을 부각하여 2016년부터 우리 군과 프랑스, 미군 합동 전승기념식으로 행사를 실시하고 있다.

UN군으로 6.25 한국 전쟁에 파병한 바 있는 미국과 프랑스 노병이 찾은 지평리 전투 전승 기념식. 몇해 전 부터 매년 해당 행사를 취재하며 UN군으로 참전했던 미군, 프랑스 노병을 현장에서 만났다.

군 관계자에게 들은 지평리 전투의 개요는 다음과 같다. 1951년 2월 13일부터 16일까지 지평리에서 진행됐으며 방어군으로 미 2사단 소속 23연대가 포진했다. 당시 미 23연대는 프랑스대대, 1유격중대, 278포병대대, 503포병대대 B포대, 2공병대대 B중대, 82대공포대대 B포대로 총 병력은 약 5,600명이었다. 공격군인 중공군은 3개 사단 5만 명 규모였다.

지평리 전투에서 미23연대와 프랑스대대는 중공군에게 포위당한 상황에서 미8군사령부로부터 지평리를 사수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중공군의 포위 상황에서 방어전투 결과 중공군 사상자 수는 4,946명으로 추산됐다. 반면 UN군 산하 미23연대는 전사 52명, 부상 259명, 실종 42명의 상대적으로 적은 피해를 입었다.

특히 당시 대대 병력으로 방어에 나선 프랑스군의 용맹함은 대단했다. 프랑스 군을 이끌었던 몽클라르(Monclar) 장군은 중공군이 야간 피리 등으로 심리전을 펼치자 수동 사이렌을 작동하며 도리어 역공세를 펼쳤다.

지평리 전투는 유엔(UN)군이 중공군을 상대로 처음으로 승리한 전투로,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공포감을 느끼던 국군과 유엔군에게 승리를 위한 자신감을 회복하게 했다. 이후 중공군의 개입으로 후퇴하던 유엔군은 반격으로 38도선 지역까지 회복했다.

▲ 지평리 전투 기념비를 바라보는 6.26 한국전쟁 참전 미군 노병 용사들

지평리 전투 승전 기념식 현장에서 만난 해외 참전 노병들은 불편한 몸에도 불구하고 '한국전쟁 참전 용사'라는 표식이 붙은 모자, 명찰을 달고 자녀, 손자, 손녀들과 지평리 전투를 회고하며 눈물을 글썽였다.

▲ 지평리 전투 승전 기념비에 헌화하는 6.25 한국전쟁 참전 미군 노병 용사들

미국에서 온 한 노병은 "나는 한국 전쟁 당시 포병으로 전투에 임했다. 비록 지평리 전투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당시 모든 UN군이라면 지평리 전투를 모두 알고 있다. 중공군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가 팽배했던 상황이었다. 지평리 전투는 처음으로 중공군을 상대로 대승해 적에 대한 환상과 공포가 사라지게 되는 중요한 터닝 포인트였다. 매우 흥분되고 의미 있는 곳을 방문하게 되어 영광이다."라고 말했다.

프랑스에서 온 노병은 실제 지평리 전투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노병으로 "당시 우리는 최정예 프랑스 군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비록 숫자는 적었지만 몽클라르 대대장님과 모든 장병이 용감하게 싸웠다. 전우들이 목숨을 걸고 싸운 장소에 다시 오게 되니 감회가 새롭다. 그리고 최신식 무기로 직접 전차, 장갑차, 총기 등을 생산하는 강군으로 변모한 한국군과 한국 경제 발전상에도 깊은 경의와 보람을 느낀다"라는 소감을 전했다.

UN군으로 6.25 전쟁에 참전한 미국, 프랑스에는 노병들부터 그 후손들에 이르기까지 비교적 상세하게 지평리 전투에 대한 이야기가 상세하게 알려져 있다. 이 전투는 현재에도 미국, 프랑스 등 해외 사관, 부사관들과 한국전쟁을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은 6.25 전세를 바꾼 결정적인 터닝포인트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 지평리 전투 전승 기념식 현장에서 만난 프랑스 대사관 무관 에릭 주앙 대령

지난 지난 2016년 전승 기념식 현장에서 만나 프랑스 대사관 무관 에릭 주앙 대령은 "프랑스 국민은 지평리를 결코 잊지 못한다. 지평리 전투 당시 프랑스 대대를 이끌던 몽클라르 대대장은 본래 3성 장군 출신이었다.  인해전술로 다가오는 중공군에 대항하기 위해 철모를 벗고 머리에 빨간 수건을 둘러매고 총검과 개머리판으로 적을 위협하는 모습에 중공군은 두려움을 느끼고 후퇴했다고 한다. 프랑스는 지금도 지평리 전투에 참전한 노병들의 노고를 위로하고 국민에게 지속해서 알리고 있다. 많은 참전 노병의 후손들은 지평리 전투를 기억하고 있으며, 자유수호의 성지라며 꼭 가보고 싶어 하는 곳으로 삼고 있다. 한국에 있는 프랑스 학교 학생들도 기회가 될 때마다 지평리 지구 전투 전적비를 찾아 승전을 기념하고 숭고한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제 전 세계적으로 6.25 한국전쟁에 참여했던 우리 용사 어르신들과 해외 노병들이 얼마 남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이분들이 생존해 있을 때 이들의 노고에 감사해 하고 우리 땅과 조국을 지켜준 역사의 장소, 전투를 잊지 않고 널리 알리는 것이 우리 후손들의 몫이 아닐까?

최노진 이코노미톡뉴스 기자 nojin7@economytalk.kr

<저작권자 © 이코노미톡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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