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대수, 자라섬 포크페스티벌에서 부를 행복의 나라 '어떤 심정일까?'

▲ 2018년 5월 19, 20일 자라섬 포크 페스티벌에 출연하는 포크 음악 대부 한대수

[최노진 기자 @이코노미톡뉴스] 한국 포크 음악의 대부 한대수가 뉴욕에서 지내는 근황을 알렸다.

한대수는 오는 5월 19, 20일 자라섬 포크페스티벌 출연을 앞두고 국제전화로 근황과 공연을 앞둔 심경을 밝혔다. 특히, 한대수는 18살 한국에서 발표한 노래 행복의 나라가 민주주의, 공산주의 이념의 장벽으로 전 세계가 분열되어 있고 한국 역시 분단된 상황에서 결코 포기하지 말고 언젠가는 장막을 걷고 우리 민족이 함께 들판을 뛰어 다닐 것이란 노래를 만들었다. 현재 남북의 화해 상황을 미리 예견한 한대수.

한대수는 자라섬 포크페스티벌에서 자신의 대표 노래 행복의 나라를 꼭 관객과 함께 부르고 싶다고 말했다. 아울러 현재 70살이라는 점을 들어 이번이 마지막 무대일 수 있다는 각오로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현재 10살 된 딸을 양육하기 위해 1년 전 한국에서 뉴욕으로 건너가 살고 있다며 한국보다 무대에 오를 기회가 없어 파트 타임으로 페인트 및 카페트 작업일을 돕고 있다는 근황을 소개했다. 여전히 낭만 음유시인인 한대수는 조만간 한국에 가서 관객과 훌륭한 밴드가 함께 평화를 노래하는 시간을 가질 생각에 흥분된다고 말했다.

자라섬 포크 페스티벌 조직위에 따르면, 한대수는 5월 19, 20일 자라섬 포크 페스티벌에서 신구 아티스트와 함께 출연한다.

다음은 현재 뉴욕에 체류 중인 한대수와 가진 전화 인터뷰 전문이다.

▲ 2018년 5월 19, 20일 자라섬 포크 페스티벌에 출연하는 포크 음악 대부 한대수

Q 요즘 미국에서 지내신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지내시는 지 팬들이 궁금해 한다. 근황 소개 부탁드립니다.

한대수 : 뉴욕 물가가 높다. 생활하기가. 전 세계에서 물가 높은 도시인 파리와 런던, 도쿄보다 뉴욕 물가가 체감적으로 3배 높은 것 같다.…15년 만에 돌아왔는데 물가가 너무 높게 올랐다. 때문에 미국 뉴욕에는 홈리스 즉 집 없이 길거리에 사는 사람이 많다. 자본주의 극치가 뉴욕 시티라고 생각하면 된다. 뉴욕 시티 거주하는 상위 10프로는 호화롭게 살고, 나머지 90프로는 서민이다.

뉴욕 교포가 많이 사는데 공연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교포들도 생활하시느라 바뻐 문화 공연에 관람하는 여유가 없는 편이다. 교포들은 자녀들이 공부를 잘해 프린스턴, 하버드 대학에 입학하는 것을 최대 목표로 삼기기 때문에 문화 생활을 할 여유가 없다. 특별히 좋은 한국 가수나 공연 자리가 열리는 것이 힘든 것 같다. 

Q 한대수 선생님의 주옥 같은 작품들 중 역시 대중들은 '행복의 나라'에 대한 관심과 애창은 2018년에도 여전하다. 오는 2018년 5월 19, 20일 진행하는 '2018 자라섬 포크 페스티벌'에 한대수 선생님이 출연하신다는 소식에 많은 팬과 언론이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69년 처음 발표한 1974년 양희영 당시의 느낌과 이번 2018년 5월 경기도 가평 자라섬에서 포크 음악을 좋아하는 팬들 앞에서 노래하실 선생님의 마음이 어떠하신지 궁금합니다.

한대수 : 우선, 2017년 한국 예술의 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피터와 늑대’ 공연으로 코리안심포니와 공연을 했었다. 1년 만에 한국에 다시 오게 되어 영광이고 기쁘다.

처음 행복의 나라는 1969년에 드라마센터에서 발표한 노래다. 이후 1971년 해병대 입대하면서 양희은 씨가 서강대 학생으로  녹음,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아무래도 첫 발표 노래이고 그리고 현재 남북 화해분위기에 잘 맞는 노래라고 생각하니 감개가 무량하다. 이번 자라섬 포크페스티벌에서 부를 행복의 나라는 더욱 의미가 깊을 것 같다.

Q 1974년 발표한 '행복의 나라'는 현재 남북 화해 평화 모드에 가장 잘 어울리는 우리 민족의 대중음악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당시 정치 사회 상황에서 여유로운 작사는 매우 당시 실제와 다르게 역설적이었을 것이라고 봅니다. 현재 2018년 남북 그리고 미국과 북한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대수 선생님의 '행복의 나라'에 대한 재조명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현재 남북 평화 분위기에 대한 생각이 궁금합니다.

▲ 2018년 5월 19, 20일 자라섬 포크 페스티벌에 출연하는 포크 음악 대부 한대수

한대수 : 이번 자라섬 포크페스티벌에 (미지의 관객) 많이 오셔서 들으셨음 좋겠다. 가사 첫 줄…..장막을 거둬라 장막은 공산주의와 민주주의로 아이언 커튼 즉 당시 냉전의 상징인 철의 장막을 거두자. 그리고 한반도에 철의 장막을 거두고 한반도에 평화 모드가 되자. 행복한 나라가 되자. 세밀하게 하면 문제가 되어 시적으로 가사를 작성한 것이다. 특히, 장막을 거둬라… 가사는 뉴욕에서 한반도를 보니 분단 조국 현실이 매우 슬펐다. 엔딩 가사에 광야는 넓고 … 하늘은 푸르다 우리가 앞으로 살 수 있는 방법은 한반도가 하나가 되어 서로 돕고 사는 화합이 될 수 있는 훌륭한 미래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를 바라보고 18살인 1969년에 작곡했다. 한대수는 2018년 한반도 화해 대화모드에 즈음해 너무 행복하다. 사랑과 평화의 음악의 축제가 되길 이를 구현하는 자라섬 포크 페스티벌이 되길 바란다. 현재 상황이 너무 감사하고 고맙고 한국 국민으로 시민으로 너무나도 좋은 일이 좋은 결과가 되길 바라고 분명 잘 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부임하고 나서 시끄러운 일이 많지만 우리가 현재 잘하고 있고 잘할 것이다.

Q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1969년 선생님이 남산 드라마 센터에서 가진 연주회를 한국 포크의 원년으로 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당시 조명을 모두 끈 암전 상태에서 시계 초침 소리가 들리는 것을 시작으로 향이 피어 오르고 커다란 톱을 연주하며 등장한 선생님의 공연은 문화 선구자이자 포크 음악의 대부, 시초라고 평가한다. 현재 생각하실때 당시 음악회와 관련된 비하인드 스토리 혹은 대중의 반응을 접한 선생님의 심경 등 에피소드가 궁금하다.

한대수 : 아무래도 1969년…. 60년대 뉴욕에서 본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에서의 첫 공연은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을 무언가 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공연 시작 1분 내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고민 끝에 시계 똑딱소리, 기차 소리가 객석에 들리게 하고 직접 톱을 들고 나가 연주했다….당시 관객이 매우 놀라고 대화를 멈추고 한대수에게 집중했다. 이후 행복의 나라를 첫 곡으로 시작했다. 당시 국내 관객들은 이미자 씨의 동백아가씨, 나훈아 씨의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 최고 히트작이라 한대수의 노래인 창작 포크 장르는 처음 들었던 상황이었다.  때문에 첫 시작에 관심을 받게 하는 장치를 마련했다.

Q '행복의 나라' 외에도 정규 음반으로 '멀고 먼 길', '고무신', '무한대', '기억상실', '천사들의 담화' 등이 있습니다. 선생님 개인적으로 가장 애착이 가거나 정이 가는 노래는 무엇일까요?

▲ 2018년 5월 19, 20일 자라섬 포크 페스티벌에 출연하는 포크 음악 대부 한대수

한대수 : 한대수의 노래는 앉아서 작곡한 것이 아님. 살아 있음, 자연스럽게 충격을 받을 때 곡을 만들었다. 우리는 음악가 집안 출신이다. 할아버지가 1930년대 바이올린 연주, 어머니는 부산에서 1940년대 유일한 피아니스트였다. 음악은 우리 집안의 공기였다., 음악으로 자랐기 때문에 사랑에 빠졌을 때, 화가 났을 때, 헤어졌을때, 돈이 없다, 친구가 나를 배반했다, 자동차 사고로 다리를 다쳤을 때마다 곡 영감이 떠올랐다. 길을 가다가 아름다운 여성을 봤을 때 등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충격을 받을 때 곡을 만들었다. 앨범이 16곡 정도일 것이다. 올해 내 나이 70살인데 모든 곡은 당시 충격을 받은 순간에 만든 곡이다. 미안하지만 딱히 한 노래를 꼽기는 어렵다. 모든 앨범을 다 좋아한다. 최고로 선정하는 것은 힘들다. 듣는 분이 선택하시는 것이 좋다. 모든 곡과 앨범이 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Q 평소 사랑하시는 부인과 딸과 함께 가정적인 생활을 하시는 것에 후배 가수들이 팬들도 부러움을 나타냅니다. 가족 앞에서 노래를 자주 불러 주시는 지 궁금하네요? ^^

한대수 : 원래 뉴욕에 오고 싶지 않았다. 한국에서 라디오 DJ도 하고 앨범도 만드며 한국에서 즐겁게 지냈다. 59살에 딸을 갖게 되었다. 깜짝 놀랐다. 알고 보니 아내의 음모였다. (웃음) 22살 연하 아내가 아이를 갖고 싶어 했다. 아이를 갖고 난 후 부부의 삶이 달라졌다. 아이가 생긴 이후에는 100프로 돈이 들더라. 아이가 아프면 병원가야하고 옷도 사야 하고 신촌 초등학교 보냈는데 학원 3~5개 가고 고등학교에는 아이들이 고문 수준으로 공부를 한다. 너무 안타깝다고 생각했다. 러시아와 몽골 피를 나눈 아내 사이 태어난 우리 아이가 인간미 있게 성장시키고 싶어 뉴욕으로 왔다. 뉴욕 물가로 고생은 하고 있지만 학업은 1시간 정도 공부하면 숙제를 마칠 수 있다. 1년 만 뉴욕에서 살아남자 하는 식으로 현재 살고 있다. 현재 딸이 10살. 고맙게도 딸이 잘 살고 대학교 입학 때까지 적어도 10년은 더 뒷바라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10살 짜리 딸이 건강하고 즐겁게 살 수 있는 교육비는 책임지겠다고 생각해 온갖 노력하고 있다. 심지어 가끔 아파트 페인트 칠 등 육체 노동을 하기도 한다. 70살에 아파트 페인트 칠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 양탄자 만드는 일도 하는데 고생한다기 보다는 매일 하루 생존한다는 기분이 고맙고 성취감이 높다. 고맙게 한국 교포 친구들이 많이 도와주고 있다. 평소 딸 양육에 집중하고 있다. 하교 후 숙제 봐주며 청소, 빨래, 치아 위해 치과 , 한국은 고맙게 국민건강보험이 있지만 미국은 보험이 적용이 안되어 보통 100달러 수술은 1만 달러, 2만 달러 1~2천만 원, 서민층과 중산층은 아프면 망한다. 미국에서는 아프면 망한다. 부자들은 괜찮지만 일반 소시민은 아프면 힘들다. 1년 살면서 자본주의 극치가 뉴욕시티인데 자본주의가 극도로 발전하면 최상위 3프로 최하위 97프로의 경계선이 있는 것 같다.

Q 올해 2018년 1월 한국 서울 종로구 인사동에서 원춘호 사진전 '사람 한대수' 전시회에 각계각층 다양한 인사들이 구름같이 몰려와 뜨거운 관심을 보였습니다. 원춘호 작가에 따르면, 3년간 한대수 선생님을 촬영했다고 들었습니다. 비오는 날 우산을 들고 거리를 헤매다 들른 해장국집에서 거친 땀을 흘리며 식사를 하시는 모습,  마을버스를 타는 한대수의 모습, 집에서 요리사이자 따님을 돌보는 딸바보 아버지 모습 등이 화제가 된 바 있습니다. 무대에서가 아닌 평소 어떻게 지내시나요?

한대수 : 원춘호 작가는 1년에 한 번씩 국제 사진 작가전을 발표하기도 한다. 인간 한대수 모습을 찍고 싶다고 해서 기획해 만들었다. 고맙게도 강산에 등 후배 가수 등이 감동했다며, 글도 써 주었다. 사진 전 중 평범하게 딸을 안고 있고 기타 치는 한대수의 모습이 스스로도 재미있더라. 전시회에서 마을버스 타고 선지 해장국 먹고 있는 것 보고 한대수가 5천 원 짜리 해장국을 먹고 마을버스를 타는 모습이 화제라고 하시던데. 실제 팬들이 지하철을 타고 다니는 것을 보고 놀라고 사인을 요청하기도 하더라. 한국 락스타는 미, 영국 락스타와 비교할 수 없다. 비하하는 것이 아니라 인구가 한국은 4500만명, 200만 명 정도가 포크 락음악 애호가.. 미국과 영국은 적어도 2억 인구가 듣는다. 앨범 발표 및 공연 시 들어오는 수입이 어마어마하다. 한국에서 열심히 공연하는 강산에, 전인권, 임재범은 폴 매커터니와 같은 수입이 나올 수 없다. 한국 인구가 적어서 그렇다. 1억 인구가 넘어야 한다. 일본은 락스타가 잘 되는 편이다. 일본은 아마 인구가 1억 5천. 1억 인구가 락 애호가이다. 또 인구 외에도 달근 이유가 있다. 일본은 1961년도에 비틀즈가 일본을 방문했다. 이를 계기로 일본 열도가 비틀즈를 접한 후 록 팬이 많이 확보하게 된 것이다. 현재 록스타는 열도 투어를 통해 충분히 수입이 생긴다. 자라섬 포크 페스티벌이 현재 타국에 비해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좋은 음악을 만드는 가수에 대한 응원과 노래를 들어주시는 것이 이들에게 큰 힘이 된다. 자라섬과 같이 아주 훌륭한 장소에서 포크 음악으로 한반도 큰 변화를 노래로 승화할 수 있는 에너지가 되길 바란다.,

Q 이번에 국내 최대 포크 페스티벌이 개최됩니다. 평소 자라섬에 가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한대수 : 아직 없다. 하지만 음악 공연과 감상하기에 좋은 곳이라고 들었다. 특히 이번 5월 자라섬에서 포크 페스티벌은 많은 첫 시작이기에 많은 분들이 와주시고 들어주셔야 한다.

Q 가수 한대수에게 포크 음악은 ... 이다. 라고 질문을 던집니다. 선생님에게 포크 음악은 무엇일까요? 

한대수 : (한대수에게 포크 음악은) …인간의 순진한 꿈을 향한 목소리. 첫 음악 활동을 시작할 때 한반도의 평화를 꿈꾸었다. 정치적인 발언은 사양하지만, 평화적인 자세, 남북간의 교류.. 독일이 통일되는데 약 500만 명이 왕래했다고 한다. 동서독간. 동독과 서독에서 왕래. 동독 아들이 서독 아버지 장례식에 참가. 서독 어머니가 동독 아들 결혼식을 방문하는 등 그러다 통일된것이다. 활발한 교류., 평화라는 교류, 이번에 가수들이 기가 막히게 남북 예술인이 교류한 것이 한반도 통일에 첫 걸음., 계속 교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Q 자유 주제로 선생님께서 한국 팬에게 하고 싶은 소감, 메시지 등이 있을까요? ^^

한대수 : 70살이 된 노인이라 시간이 많다. 흔히 만 70살이 되면 목소리를 잃어버린다고 한다. 어쩌면 70살이 되었기에 이번 자라섬 포크 페스티벌이 생애 마지막 공연이 될 수 있다는 각오로 많은 준비를 하고 있다. 함께 공연하는 밴드가 막강하니 여러분 귀한 손님에게 기가 막힌 선물을 드리도록 할 것이다. 같이 행복의 나라를 합창하고 싶다. 5월 19, 20일 시간 내셔서 함께 노래를 듣고 부르는 시간이 꼭 되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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